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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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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이름으로 아우팅?

‘메르스법’ 근거 성·나이·이성 친구 종교까지 공개…
필요한 정보만 담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하자”
등록 2020-05-16 16:23 수정 2020-05-19 10:35
5월10일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 현관에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주민을 비난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5월10일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 현관에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주민을 비난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사람은 사람을 낙인찍고 차별한다. 4월30일 부처님오신날부터 5월5일 어린이날로 이어진 ‘황금연휴’가 끝난 이후, 수그러들었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혐오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도 다시 드러났다. 중국인 유학생이나 재중동포, 신천지예수교 신도에게 쏟아지던 따가운 시선이 이번엔 성소수자에게로 향했다.

혐오 부추기는 언론 보도

시작은 5월7일 <국민일보>가 인터넷에 띄운 ‘[단독]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 보도였다. 앞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금일 확인된 지역사회 확진자가 2일 0시20분~오전 3시 방문한 사실을 알려드린다’는 공지, 용인시 66번째 확진자 이동 동선(이태원에 간 사실은 ‘관외 동선’으로 드러나 있지 않음) 등이 합쳐진 내용이었다. 이후 일부 성소수자가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흥시설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5월7일부터 11일 오후 5시까지 네이버 검색으로 확인한 ‘동성애’ ‘게이클럽’ ‘게이’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는 1076건에 달했다.

5월12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7개 단체가 꾸린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드러나는 걸 매우 두려워한다. 지금도 자가격리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렵다는 상담 전화가 온다. 당장은 아니지만 가족과 직장에서 불이익, 차별·폭력 피해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소수자들에겐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자기 뜻과 상관없이 성적 지향이 강제로 공개되는 ‘아우팅’ 불안이 있었다. 확진자 발생과 동시에 이뤄지는 동선 공개에서 성소수자가 모인 단체나 자주 가는 업소 방문 이력이 나타날 경우 낙인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 배제는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예방의학자의 견해다. 처벌받거나 자신의 건강이 상할 수 있음에도 사회적 손가락질이 두려워 역학 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신천지예수교에 대한 강제 수사가 방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중론을 유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감염병 예방 효과를 높이는 동선 공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염병 환자 동선 공개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재난을 계기로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정보를 비밀에 부치면서 불안과 공포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그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감염병 확산 때 환자 이동 경로와 수단, 진료 의료기관, 접촉자 현황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알아야 하는 정보 신속 공개’ 조항 등이 포함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명 ‘메르스법’이 통과된다.

방역 당국 지침 안 따르는 지자체

이런 법을 근거로 2월 경북 구미시는 코로나19 확진자 이름의 성(姓)과 나이, 성별, 이성 친구가 신천지예수교 집회에 참여한 사실까지 공개했다. 확진자가 누구인지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가까운 지인이라면 감염 당사자가 누군지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당사자는 SNS에서 “의도해서 걸린 것이 아닌데 불편하게 해 죄송하다. 제발 신상 정보를 퍼뜨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신상 노출 피해가 이어지면서 3월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감염을 우려할 만큼의 접촉이 일어난 장소와 이동 수단 공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 제외 △모든 접촉자가 파악된 경우 접촉 장소 비공개 가능 등이 포함된 지침을 마련해 지방정부에 배포했다. 그러나 이 지침은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다. 익명을 요청한 보건 당국 관계자는 “지자체가 이 지침을 잘 지키지 않는다. 주민들이 확진자의 구체적인 동선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이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의 경우 5~7번째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면서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장소명을 공개하지 않자, 이를 질타하는 민원이 잇따랐다. 4월26일 김상호 하남시장은 페이스북 등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속 시원하게 모든 장소를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운 행정이다.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동선에 맞춰 소독·방역을 하고, 공개가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확진자 진술과 폐회로티브이(CCTV)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확진자 동선 공개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방역 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접촉자들이 이 정보를 보고 자발적으로 신고하거나 검사받도록 하는 것이다.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확진자 동선에 담긴 과도한 개인 정보는 덜어내면서도 꼭 필요한 정보를 편리하게 볼 수 있는 전국 단위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지자체가 제각각 공개하는 환자 인적 사항과 동선을 하나의 플랫폼에 입력하되, 그중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감염 위험이 큰 날짜·시간·지역·장소만 표시하는 방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최근 발간한 ‘코로나19 대응 종합보고서’에서 “확진자 정보 공개 목적을 명확히 하고, 사생활 침해 최소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언제든 다수 환자 생길 수 있는 상황

이태원 클럽에 이어 홍익대 인근 술집에서도 집단감염(5월12~13일 5명 확진)이 일어나는 등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월9일 브리핑에서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이 경기도 용인시 66번째 확진자 1명에 의한 전파가 아닌, 여러 감염 고리와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어느 개인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종헌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연구교수는 “어디에든 코로나19 증상이 없거나 경미해 감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 전파자가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예배당과 실내 체육시설, 정신병원 폐쇄병동 등 환기가 되지 않는 밀폐된 환경에서 비말(침이나 콧물) 접촉이 많으면 언제든 다수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이희영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책단 공동단장(분당 서울대학교병원 교수)은 “내년까지 장기전이 예상되므로, 연령·지역·직종·분야별 감염 위험도를 평가하고 예방 조처가 충분한지 확인하면서 통제를 푸는, 더 정교한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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